남성 퀴어 영화라는 것은 알았지만 제목이 조금은 독특해서 보게 되었던 영화입니다. 그런데 사랑보다는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한, 심리적으로 불안한 조나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퀴어 영화로 분류하기엔 조금 어려운 점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과연 조나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지..
(스포있음)
아빠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 중인 조나스는 쉬지 않고 게임보이만 하고 있습니다. 주유소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아빠는 조나스에게 자신이 어디에 간다는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나가는데, 게임기의 배터리가 다 되어 게임기가 꺼지게 되자 짜증을 보이는 조나스. 그리고 어두운 숲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보이는 환영에 놀라는 조나스.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고 그때 다행히 아빠가 돌아와 조나스를 안정시켜 줍니다.
30대의 모습인 조나스. 조나스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옮겨주는 포터 일을 하고 있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게이 클럽에서 바람을 피우다 결국 애인에게도 버림받고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갈 곳도 없는 조나스는 떠돌아다니다 호텔로 숙박을 하러 들어갑니다.
10대의 조나스. 그는 학교에서 특별한 친구도 없이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9학년 첫날, 전학생 나탕이 조나스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점점 나탕과 지내는 시간이 많이 지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됩니다. 나탕의 집에서 놀기로 한 조나스는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둘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저녁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 둘은 나탕 엄마의 차를 타고 영화관으로 향합니다. 나탕의 엄마는 임신 중이었는데, 영화를 보는 도중에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간다는 음성 메시지를 남기게 되고, 영화가 끝난 후 나탕은 병원에 가야 하는데 가질 않고 다른 곳으로 향합니다. 보이즈 파라다이스(게이 클럽)로 조나스를 데리고 가는 나탕은 입장을 거절당하자 화를 냅니다. 그러던 중 클럽에서 나온 남자가 그들을 보고 자신이 다른 클럽으로 데려가 준다고 합니다. 조나스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를 따라가는 나탕에 못 이겨 함께 차를 타고 따라가게 됩니다. 하지만 남자는 다 왔다는 말과 함께 산속으로 자꾸 들어가게 되고 이상함을 느낀 나탕이 반항을 하자 폭력을 가하는 남자. 놀란 조나스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려 차를 세우고 도망쳐 나옵니다. 하지만 나탕을 구하지 못하고 결국 나탕은 그렇게 남자에게 끌려가게 됩니다.
18년이 지난 현재, 조나스는 아직 나탕에 대한 생사도 모른 체, 나탕의 이름만 보면 혹시 살아있는지 확인하러 찾아가고 있습니다. 조나스는 나탕의 동생 주위를 맴돌며 다니다,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나탕의 동생에게 숙박객으로 접근합니다. 둘은 술자리를 함께하고 술에 취한 조나스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데 잠에서 깬 조나스는 그곳에서 나탕의 엄마와 마주치게 됩니다. 조나스는 나탕의 엄마에게 18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사실대로 털어놓고는 집에서 나옵니다. 어디선가 죽었을 거라 믿고 있는 나탕의 동생과 함께 차를 타고 향하던 중, 나탕과 함께 가려고 했던 놀이공원에 잠시 들리자고 얘기하는 조나스. 조나스의 표정이 어딘가 밝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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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동안 마음의 짐을 가지고 살아가던 조나스. 나탕의 사고에 대해 겁이 나 거짓진술을 했었고 그 이후 나탕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 삶을 옥죄여가며 살아왔던 것이죠. 스스로도 나탕을 찾고 싶어 여러 노력을 했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삶은 더욱 타락해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나탕의 가족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나탕의 동생 주변을 맴돌며 스토커처럼 기웃거렸을 조나단의 모습이 측은해 보입니다.
18년 만에 진실을 알게 된 나탕의 엄마도 조나스를 탓하기보다는 그동안 힘들게 살았을 그를 이해해주며 감싸줍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기에 엄마도 죄책감 속에 지냈을 조나스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겠죠. 자신의 막내아들이 태어난 날, 큰 아들이 죽었다면 기일이 되었을, 그렇게 본다면 나탕의 엄마에게도 큰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입니다. 나탕의 동생도 생일을 즐길 수 없는 그 나름대로 큰 아픔이 되었을 테고요. 조나스와 나탕의 가족에게 큰 상처가 되었지만 사실을 털어놓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드디어 무거운 짐짝에서 조금은 벗어난 그들은 이젠 조금 더 행복해져도 될 것 같습니다.
홀가분해진 마음에 놀이공원을 찾아가는 조나스의 모습에서 이젠 나탕을 몫까지 열심히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자신을 놓아버리게 된, 퀴어 영화지만 결코 퀴어 영화로 볼 수 없는 영화 '내 이름은 조나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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