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풀 속에서'라는 영문을 그대로 번역한 제목이 끌리지는 않았지만, 살짝 보이는 예고편과 스티븐 킹과 그의 아들이 쓴 호러 소설의 원작이라는 말에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보통 긴 풀 숲, 옥수수밭 이런 장소에서 벌어지는 공포가 주는 긴장감도 높으니까요. 책을 읽어보지 않았고, 이러한 소설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지만,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만 믿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스포있음)
임산부(베키)와 그의 오빠(칼)은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가고 있으며, 옆으로는 긴 풀 숲이 있습니다. 베키는 칼이 차 안에서 먹는 햄버거에 입덧 증상을 보이며 잠시 차를 멈추게 됩니다. 속을 정리하고 출발하려는데 풀 숲 안에서 도와달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냥 갈 수 없었던 베키와 칼은 풀 숲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아이의 목소리만 들릴뿐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베키는 풀 숲으로 들어가다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다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칼을 찾지만, 칼도 목소리만 들릴뿐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높은 풀로 인해 시야 확보도 어려운 상황에서 베키와 칼은 서로의 위치 확인을 위해 높게 뛰어오릅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있음을 깨닫고 정확한 확인을 위해 다시 한번 뛰어오르는데... 불과 몇 미터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잠깐 사이에 그렇게 먼 거리로 뛰어갔을 리도 없고, 이제 베키와 칼은 풀 숲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갈 길을 찾지만, 그 어디에도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밤이 찾아오고 종일 풀 숲을 돌아다니다 지친 칼은 한 소년(토빈)을 만나게 되고 토빈의 안내를 받아 커다란 돌이 세워져 있는 공간으로 가게 됩니다. 같은 시각, 베키는 낯선 남자(로스)를 만나게 되고 나가는 길을 안내하겠다는 로스를 따라가다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돌 앞에 마주하고 있는 칼, 토빈은 칼에게 돌을 만져보라고 하며 칼은 이를 듣고 돌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들린 베키의 비명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베키를 찾아 나섭니다.
화면은 바뀌고, 베키의 남자친구(트레비스)는 두 달 전 실종된 베키와 칼을 찾아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칼의 차를 발견하고, 숲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트레비스도 숲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트레비스는 길을 잃을 것을 대비하여 풀을 꺾어 방향을 표시하지만, 풀들은 마치 살아있음을 알리듯이 스스로 꺾은 풀을 풀어버리고, 해를 보며 방향을 확인하지만 순간적으로 바뀐 해의 방향에 트레비스도 이상함을 감지합니다. 헤매던 트레비스는 토빈을 만나는데, 토빈은 이미 트레비스를 알고 있습니다. 토빈은 베키를 알고 있다며 트레비스를 안내하지만, 이미 베키는 죽어서 싸늘한 시체가 된 상태입니다. 안내하고 사라진 토빈을 부르는데... 풀 밖에서 그 소리를 들은 토빈의 가족이 풀 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분명 죽은 베키의 시체를 봤는데, 트레비스는 살아있는 베키를 만나게 됩니다. 베키 또한 어떻게 트레비스가 풀 숲으로 먼저 들어와 있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만난 토빈과 그의 식구들... 무엇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계속 같은 공간에서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궁금증은 로스가 안내한 커다란 돌 앞에서 풀리게 됩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지는 거대한 돌. 그 돌을 만진 후 로스는 알 수 없는 힘을 느끼고 사람들에게도 만져보길 권유하지만, 다들 거부하자 사람들을 죽이게 됩니다. 반복되는 이들의 모습..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임신한 베키가 다시 이 숲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로스를 없애야 한다는 것을 알고 트레비스는 그를 죽이고, 스스로 돌을 만집니다. 트레비스는 끝까지 살아남은 토빈을 숲 밖으로 안내해 주며, 다시는 베키가 이 숲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달라고 합니다. 토빈은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 슬픔도 잠시 트레비스의 안내로 숲 밖으로 나오게 되고, 그때 숲에 들어가려고 하는 베키와 칼을 보고는 얼른 이 곳을 떠나자고 하며 그들과 함께 떠납니다. 그리고 숲 안에서 이 상황을 듣던 트레비스는 안도의 얼굴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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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터 몰입도가 강해 집중해서 보다보니, 갑자기 시공간의 변화에 이해를 못 하고 당황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풀 숲에서 정말 나올 수 없었던 것일까요? 거대한 돌, 그 돌은 고대에서부터 내려온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 돌을 만지면 숲에 대한 모든 것을 느끼고, 심지어 나가는 길까지 모두 알 수가 있는데 어느 누구도 이를 이용하지 않았는지.. 심지어 어린 토빈도 돌의 힘을 느꼈지만 제대로 이용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시간의 무한루프 속에서 그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아보지만 이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트레비스의 희생으로 인해 드디어 벗어날 수 있게 되는 풀 숲. 누군가의 희생을 기다렸던 것일까. 이는 마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해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행동(트레비스를 대하는 칼의 행동), 우월한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지배하려는 욕심(자신의 말에 따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려는 로스),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마음(돌의 힘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나가도록 안내해 줄 수 있지만 욕심을 챙기려 행하지 않은 로스)..
로스는 이런 말을 합니다. "결국은 풀이야. 이 곳에서 나고 죽어 아무 데도 갈 수 없어. 풀과 같은 존재야"(정확한 대사가 아니고 이런 내용의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 그 안에서 풀과 같은 존재로 다들 지냈던 것이죠. 이 말을 듣는 순간, 아.. 결국 인간다운 행동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임 슬립으로 인해 갇혔다면, 다른 시간대에 또 다른 내가 있었을 텐데 그들은 무엇이 두려워서 용기를 내지 않았는지.
신비한 힘을 지닌 고대 돌? 이라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고,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몇 있지만, 높은 풀 숲이라는 장소가 주는 공포감을 적절히 활용하여 만든 뭐라 정의할 수는 없지만 여러 의미가 담긴 스릴러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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